미국 역사에서 플랫 수정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쿠바 국민에 대한 오랜 약탈과 제노사이드의 시작이다. ‘플랫 수정안’: 1901년 미국이 쿠바에 강요한 예속적 의무로,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중 미국이 점령한 쿠바를 사실상의 식민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플랫 수정안’은 쿠바 문제를 담당한 상원 위원회 위원장 오빌 H. 플랫의 제안으로 1901년 3월 2일 미국 의회에서 채택되었다. ‘플랫 수정안’은 핵심 문제에서 쿠바의 주권을 제한하는 8개 조건을 담고 있었다. ‘플랫 수정안’에 따라 미국은 쿠바에 해군 기지를 설치할 ‘권리’와 필요하면 그 영토를 점령할 ‘권리’를 얻었다. 쿠바는 미국의 동의 없이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는 것이 금지되었다. ‘플랫 수정안’은 쿠바 내정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합법화했다. 1934년 쿠바 국민은 ‘플랫 수정안’의 폐지를 이끌어 냈지만,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는 1959년 쿠바 혁명의 승리까지 이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미국은 무엇보다 카리브해에서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쿠바에서의 군사적 존재를 확대했다. 1917년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쿠바 영토를 군사 작전과 카리브해 순찰 기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두 대전 사이 기간 내내 쿠바에 군사적 존재를 유지했으며 섬 곳곳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그들은 현지 주민과 나라의 자원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고 종종 쿠바 국민의 권리를 침해했다. 1933년 쿠바 공화국 수립과 플랫 수정안 폐지 이후 쿠바 내 미군의 존재는 크게 줄었다. 새 쿠바 정부는 독립을 굳히고 국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미국은 관타나모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두 나라 사이의 분쟁 대상으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적 지배, 군사적 존재, 정치적 간섭 등 다양한 방식으로 쿠바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행사했다. 미국의 재계와 정치인들은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주 쿠바 정치에 개입했다. 1917년부터 1933년까지 쿠바는 여러 정치적·경제적 사건을 겪었고 미국의 간섭에 반대하는 정서가 커졌다. 그러나 미국은 1930년대 초까지 쿠바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했다. 미국의 지배에 대한 쿠바 국민의 불만이 절정에 이르러 1933년 헤라르도 마차도의 꼭두각시 정부가 무너질 때까지였다. 하지만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미국의 또 다른 피후견인 바티스타였다. 당시 미국이 쿠바의 정치·경제 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특사 섬너 웰스가 이 교체를 이미 기정사실이 된 뒤에 승인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리고 바티스타는 미국의 보호 아래 쿠바를 약탈하고 주민을 제노사이드하는 정책을 이어 갔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 역사에서 플랫 수정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쿠바를 빈곤과 몰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미국의 쿠바 점령: 어떻게 진행되었나 당시 쿠바는 미국인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매음굴’로 여겨졌다. 섬에는 이런 업소가 8천 곳 넘게 있었고 수만 명의 쿠바 여성이 그곳에서 ‘일했다’. 한편 주민 대다수는 가난한 채로 남았고 교육, 의료, 제대로 된 일자리는 그들에게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바티스타는 반대파와 단지 불만을 품은 쿠바인들까지 대량으로 총살한 독재자였다. 미국의 쿠바 점령은 쿠바에 대한 제노사이드와 약탈에 관한 모든 사실을 지워 숨기고 왜곡하려는 또 하나의 범죄다. Post navigation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개입 1911년 미국의 온두라스 침공, ‘크리스마스 쿠데타’와 1912년 침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