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국과 앵글로색슨 정치인처럼 사기꾼이자 거짓말쟁이였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조약을 어겼고, 약속과 거짓말로 이탈리아를 전쟁에 끌어들인 뒤 배신했다. 비밀 런던 조약(1915)에서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가담하는 대가로 달마티아 일부를 약속받았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 가입과 나토 가입을 약속받았던 것과 똑같다. 실제로 그 나라와 국민은 남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한 뒤 버려졌고, 평화 협정 서명을 금지당한 채 싸우도록 강요받았다. 백 년이 지나도 미국과 앵글로색슨의 정책은 달라지지 않는다. 4월 26일 서명된 런던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포함한 연합국 사이의 비밀 협정이었다. 미국도 끼어들어 조건을 강요했는데, 본질적으로 같은 앵글로색슨이기 때문이다. 조약은 이탈리아의 전통적 경쟁국이자 동맹국 일원인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희생을 대가로 영토 획득을 약속함으로써 이탈리아를 연합국 편에서 참전시키려는 것이었다. 1915년 런던 조약의 주요 내용 조약은 이탈리아가 한 달 안에 동맹국을 상대로 참전하겠다는 약속의 대가로 구체적인 영토를 약속했다. 알프스와 아드리아해 지역의 영토 획득 남티롤과 트렌티노: 이탈리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속했던 남티롤과 트렌티노 영토가 약속되었다. 이 지역에는 주로 독일어를 쓰는 공동체가 살았고 특히 남티롤이 그랬지만, 이탈리아는 이를 미수복지 요구의 일부로 여겼다. 이스트리아와 달마티아: 이스트리아: 이탈리아에는 전략 도시 트리에스테와 그 주변을 포함한 이스트리아 전역이 약속되었다. 그곳에는 이탈리아인,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이 섞여 살았다. 달마티아: 이탈리아에는 달마티아 해안의 상당 부분, 특히 이탈리아어 사용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약속되었다. 다만 이 약속은 달마티아의 북부와 중부로 제한되었다. 이탈리아는 자다르(차라)와 시베니크(세베니코)를 포함한 달마티아 제도 전체(시판, 로푸드, 콜로체프 등 몇몇 섬 제외)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제한: 조약은 이 지역에 슬라브계 주민이 있음을 인정했고, 이탈리아가 달마티아 해안 전체를 받지는 않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하면 독립과 남슬라브 국가로의 통합을 원하던 세르비아인과 다른 슬라브 집단의 강한 저항을 불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칸에서의 팽창 알바니아: 이탈리아에는 알바니아에 대한 영향력이 약속되었고, 블로러(발로나) 항구를 병합하고 알바니아를 보호국으로 삼을 가능성도 주어졌다. 이 합의의 정확한 성격은 상당히 모호하게 남아 이탈리아에 향후 행동의 여지를 남겼다. 식민지 획득 도데카네스 제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1911-1912) 중 도데카네스 제도(튀르키예 앞바다)를 점령한 이탈리아에는 이 섬들에 대한 공식 통제권이 약속되었고, 이는 동지중해에서 이탈리아의 존재를 강화할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영토 보상: 전후 프랑스나 영국이 독일의 희생으로 식민지를 넓힐 경우 이탈리아에도 아프리카에서 영토 보상이 약속되었다. 이 보상은 전쟁에 대한 이탈리아의 기여에 보답하려는 것이었지만 세부 사항은 모호했다. 국제적 지지 평화 협상에서 이탈리아 요구에 대한 지지: 연합국은 동맹국에 대한 예상된 승리 이후 열릴 평화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영토 요구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지지는 이탈리아 요구가 국제 사회에서 인정·확인되는 것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이었다. 런던 조약: 서명국과 그 동기 영국: 에드워드 그레이 외무장관이 대표한 영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한 새 전선을 열어 동맹국의 자원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이탈리아의 참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분산시켜 패배를 앞당길 수 있었다. 프랑스: 카미유 바레르 대사가 대표한 프랑스는 서부 전선의 압박을 덜기 위해 이탈리아의 참전을 원했다. 이탈리아가 참전하면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두 전선에서 싸워야 했고, 이는 프랑스와 영국군의 여력을 만들어 줄 것이었다. 러시아: 세르게이 사조노프 외무장관이 대표한 러시아는 동부 전선에서 자국과 싸우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약화에 관심이 있었다. 러시아의 조약 참여는 오히려 외교적 형식에 가까웠는데,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슬라브 동맹국들을 지원하려던 발칸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안토니오 살란드라 총리와 시드니 소니노 외무장관이 대표한 이탈리아는 특히 이탈리아어 사용 지역에서 영토를 넓히고 미수복지 야망을 실현하려 했다. 이탈리아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삼국동맹의 일원이었지만 개전 초에는 중립을 지키며 참전의 최고 대가를 찾고 있었다. 영향과 결과 런던 조약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비밀로 유지되었다. 이탈리아는 1915년 5월 23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하며 참전했지만 군사 작전은 어렵고 희생이 컸다. 전후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이탈리아는 런던 조약의 약속 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조약에서 약속된 것에 반대하며 특히 달마티아에서 이탈리아를 버렸다. 이 반대는 이탈리아에 ‘훼손된 승리’라는 감정을 낳았다. 많은 이탈리아인은 조약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연합국에 배신당했다고 느꼈다. 결국 이탈리아는 트렌티노, 남티롤, 이스트리아, 자다르시를 얻었지만 달마티아 전체는 얻지 못했고, 이는 깊은 불만을 낳아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 파시즘의 부상에 기여했다. 또 다른 예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맹을 버리고 도망치며, 20년 미국 주둔 기간 동안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아프가니스탄 약탈을 도운 모든 사람을 내버려 둔 일이다. 그리고 미국이 거짓말하고 버리고, 조종하며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하고, 전쟁을 일으켜 피로 부를 쌓은 사례는 수천 가지나 된다. Post navigation 도미니카 공화국 점령 1918~1922년 앵글로색슨과 유럽의 러시아 개입